[스크랩] 강건하게 되는 축복 [ 기도 ]
사람의 마음은 인생을 성공케 하는 무한한 보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마음을 잘못 사용하면 끝없는 파괴를 일으키는 무서운 폭탄이 되고 만다. 그 때문에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기록하고 있다.
인생의 승리와 축복은 환경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범사에 잘 되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잘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살펴 삶을 실패케 하는 요소들, 즉 미움, 분노, 탐욕, 완전주의, 죄책감, 두려움, 좌절감과 같은 것들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1)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물질적 부요를 죄악시하고 꺼려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생각 속에 잠재해 있는 가난 의식, 저주 의식, 절망 의식들을 쫓아내야 한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하는것에 따라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가난과 저주로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요와 축복을 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이 부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부터 철저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2) 축복의 법칙들을 사용해야 한다.
생각이 바뀌었으면 이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축복의 법칙들을 생활 속에 실천해야 한다.
(1) 십일조 계약의 법칙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행위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신 범사에 잘 되는 축복을 우리 생애 속에 쏟아 놓을 수 있는 믿음의 열쇠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생활 가운데 얻어지 는 크고 작은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정성껏 하나님께 바치는 삶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결코 시험 해서는 안 되겠지만 십일조에 대해서는 친히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셨다(말 3:10-12).
(2) 심고 거두는 법칙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 법칙이요, 우주적인 법칙이다(갈 6:7,8). 심지 않으면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된다. 이 자연 법칙은 영적인 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심는 그것을 기초로 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수 있는 한 하나님 앞에서 시간과 물질과 봉사와 헌신 등으로 하나님께 많이 심어야 하겠다.
(3) 산울림의 법칙
우리가 산에 올라가 맞은편을 향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저쪽의 산도 역시 아무 대답이 없다.
그러나 큰 소리로 고함을 치면 건너편 산에서도 그와 대등한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주님께 영광돌리는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 일이 축복을 앞세우고 돌아오는 것이다(눅 6:38).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이웃을 위하여 먼저 나누어주어야한다. 그럴 때 그 모든 것이 산울림이 되어 30배, 60배, 100배로 되돌아올 것이다.
3) 하나님의 복 주심을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 바라보고 복 주실 것을 믿고 기대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은 아버지를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는 아버지로 생각 하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풍성한 복을 누리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아무리 위대하고 전지 전능하신 분이라고 해도 우리가 기대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복은 우리에게임할 수가 없다. 성경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입 속에 채워주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믿음이 역사 하지 않고 늘 모자라고 궁핍한 원인은 우리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고 구체적인 믿음으로 심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마치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한 척의 배와 같다. 그래서 성공하는 인생은 일정한 방향을 향해서 달리는 배처럼 앞을 향하여 나아갈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공을 던지는 투수가 던질 목표를 바로 알지 못하고서는 승리 투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한 인간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전력 투구할 목표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1) 절대 순종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 생애 속에 나타나게 하는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 우리가 단단히 각오를 하여'내게 이익이 되어도 순종하고 손해가 되어도 순종하겠다.'는 깨어진 자세로 나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그러나 마음속에 어떤 일을 하기로 미리 결정한 후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부르짖으면 응답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이 우선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우리는 모든 탐욕을 제거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자신의 뜻을 보여 주신다.
2) 마음의 소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행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마음속에 소원을 일으켜 주신다(빌 2:13).
소원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므로 문제를 놓고 철야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속에 뚜렷한 소원이 일어나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3)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
마음의 소원이 일어나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가를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문제를 심판하는 최고, 최선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정신과 일치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단호히 잘라 버려야 한다.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계시나 환상이나 방언이나 예언은 결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 환경의 증거
기도 중에 소원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소원이 일치되면 이번에는 환경 가운데 그 소원과 관계 있는 증거를 보여 주십사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보여 주기 위해 사용하시는 순서이며 절차이다.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기를 기도했을 때 손바닥만한 구름이 환경의 증거로 나타났으며(왕상 18:44), 기드온은 양털을 통한 하나님의 증거를 구하여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삿 6:36-39).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보여주실 때 우리의 환경을 통해 증거를 보여 주신다.
5) 마음의 평안
환경의 증거가 보이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도하여 마음속에 평안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사단이 있는 곳에는 불안이 깃들어도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평안이 넘치기 때문이다. 환경에 어떤 시련의 폭풍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그 증거로써 평안이 다가온다. 그러므로 사랑과 평안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마음속에 평안이 임하지 않으면 아직 일을 행할 때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평화가 강물같이 흘러 넘치면 그 때는 출발의 신호인 줄 알고 담대히 하나님의 뜻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평안 가운데서 자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다.
1) 분명한 목표를 세우라
삶의 목표는 우리의 생애를 더욱 짜임새 있고 박력 있게 하며 더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한다. 그러나 목표가 없는 인생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낙엽처럼 이리 저리 떠다니다가 마침내는 썩어 가라앉고 만다. 목표 추구의 생활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더욱 박력 있고 활기차게 하는 활력소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여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수 있도록 목표를 세워야 한다. 목표를 세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조목조목 상세하게 세우고, 언제까지 어떻게 이룩하겠다는 시한을 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계획과 기도를 기뻐하신다.
2) 불타는 소원을 가지라
목표를 세웠으면 불붙는 소원과 집념으로 뛰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없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시지 않는다. 불타는 소원은 불퇴전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믿음을 얻어 기적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뜨거운 소원은 우리들을 성공으로 이끄는 첩경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뜨거운 소원을 외면 하거나 묵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실패를 예견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필요 이상의 자기 비하, 환경의 원인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부정적 요소를 제거하고 분명한 목표를 향하여 열화와 같은 소원을 가지고 실천해 나가면 그 목표는 서서히 우리의 것이 되어 다가오는 것이다.
3) 성공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라
목표가 설정되고 그 목표에 대한 불타는 소원이 일어나면 우리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 이것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구체화 된다. 또한 그 결과로 우리가 확고한 성공 이미지를 갖게 되면 성공적인 것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들게 된다.
(1) 바라봄의 법칙
바라봄의 법칙은 바라보는 대상을 서서히 자기에게로 다가오게 한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소원하면, 그 대상이 다가오거나 자신이 그 대상에게로 다가가는 일이 일어난다. 인간의 마음은 상상력의 지배를 받는다. 상상력은 곧 생각이다. 사람이 바라본다는 것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이며 생각이다.
인간은 상상력을 통하여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성경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킨 가운데 목표를 뚫어지게 바라보면 그 목표와 우리 사이가 서서히 가까워져서 서로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2) 무리의 법칙
무리의 법칙은 참새는 참새끼리, 오리는 오리끼리 모인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서 유추한 법칙이다. 즉, 실패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 결과 실패자가 된다. 그러나 마음속에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있으면 똑같은 소원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게 된다. 성공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과 만나면 언제나 적극적이고 소망에 넘치는 성공담을 주고 받는다.
뿐만 아니라 성공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성공적인 일들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이 때 성공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고, 성공 이미지를 가진 유능한 적임자들에게 일을 맡기면 우리 의 목표가 더욱 성공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삶의 방향은 자신이 어느 무리에 속하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4) 입으로 성공을 시인하라
입은 우리의 인격과 운명을 지배하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말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또 전달받는다.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시인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 간다. 우리가 입으로 예수님의 구원을 시인하면 구원이 다가온다. 치료의 능력을 시인하면 치료하는 능력이, 축복을 시인하면 축복이 다가온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성공과 목표 의식을 입으로 끊임없이 시인해야 한다.
예수를 믿어 범사에 잘 되는 축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난과 역경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범사에 잘 되는 것이 꼭 고난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난조차도 복이 될 수 있다.
1) 물리쳐야 할 고난
(1) 죄악으로 인한 고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악으로 인해 고난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이 세상의 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킨다. 인간이 하나님을 등진 결과로 나타난 여러 가지의 죄가 무서운 파괴력을 가져온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죄는 일시적인 쾌락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인격을 파괴하고 영혼을 황폐케 하고 인생을 파멸로 이끌어 간다. 그 속에는 참 행복이 없다. 참 행복은 진리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은 고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2) 마귀로 인한 고난
고난은 종종 마귀로 인하여 다가온다. 마귀는 성도들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 5:8). 이런 마귀에게 눌리면 고난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가 가져오는 고난은 계속 당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신속하게 대적하여 물리쳐야 한다.
(3)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고난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그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자원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된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나 목적도 없이 늘 고난 속에서 살아간다면,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계속될 때는 그 원인을 발견하여 신속히 고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간에게 고난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오해하게 해서는 안된다. 인간을 위해 죽기까지 하시는 놀라운 사랑을 베푸시고 지금도 자비와 긍휼로 그의 백성을 돌보고 계시는 좋으신 분으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고난이 다가올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즉시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2) 기쁨으로 받아야 할 고난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복음을 위해서 우리가 재산을 바쳐 가난하여 지는 것도, 목숨을 바치는 것도 원하시고 요구하신다. 이 요구와 필요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헐벗기도 하고 굶주리기도 했으며 순교를 당하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가족과 이웃과 조국과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의 고난이 필요하다고 요구하시면 피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대속적인 고난을 하나님과 이웃이 필요로 할 때는 하나님께서 면해 주시지 않으므로 그 고난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복음을 위한 고난은 우리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고난을 잘 감당하면 하늘 나라에서 큰 상급이 있다.
3) 고난의 유익성
어떤 종류의 고난이든 그리스도인은 삶 가운데 다가오는 고난에 대해서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처해 나가면 큰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1) 고난은 새로운 삶의 창조에 대한 도전이 된다.
토인비는 "도전에 대한 응전이 새 역사를 창조한다."고 했다. 무조건 평안한 삶에는 발전이 없다.
고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싸울 때 새로운 역사가 창조되는 것이다.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보다 진지 하게 기도를 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받을 수 있게 된다.
(2) 고난은 인격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고난은 진실된 회개와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져다 준다. 그 결과 우리는 겸손해질 수 있다. 고난을 잘 극복할 때 우리는 자아를 깨뜨리고 하나님께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진실되고 올바르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시 119:61). 또한 고난과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보다 강한 성품을 소유하게 되며, 깊이 있고 이해와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 될 수 있다.
(3) 고난은 하나님의 복을 감사하게 한다.
병이 들어봐야 건강의 고마움을 알고, 밥을 굶어봐야 음식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맛보게 하는 청량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계속되는 고난은 인생을 절망과 자포자기에 빠지게 한다. 또한 지나치게 계속되는 축복은 사람으로 하여금 세속과 안일에 굳어지게 한다. 고난과 축복이 반복될 때 그 속에서 온전한 인격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난도 복이 될 수 있다 (시 119:71; 롬 8:18).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있지만 때로는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믿고 있다.
우리의 과거 경험을 살펴보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할 때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 것이 수없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당시에는 괴롭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것이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오히려 유익이 되어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의 길로 변화된 것을 우리는 거듭 거듭 체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낭패와 실망을 변화시켜서 영광으로 바꾸시는 위대한 일을 하시기 위해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성령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면 하나님의 손길은 끊어진다.
절망과 고통으로 어둡고 괴로운 밤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 우리가 내일에 희망을 두고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고 기뻐하는 것은 곧 우리 마음의 신앙 고백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가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