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이야기

주님 안에서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jaioong 2012. 9. 30. 16:52

ㅇㅇㅇ님 우리 주님 안에서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ㅇㅇ에서 부족한 사람 ㅇㅇㅇ 인사 올립니다.

ㅇㅇㅇ님! ㅇㅇㅇ을 내려오고 난 후 저는 더 성경을 살펴 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율법과 은혜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더 살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자신부터 진리 안에 바로 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기에 더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때 그 일로 인해 더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기회가 되었으니 이 모든게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ㅇㅇㅇ님! 저는 신학도 하지 않았고, 그리고 단 한번도 그 누구로 통해 성경 공부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젊어서 부터 성경을 보았고, 또 가끔식 성경적으로 풀이 되었다고 여겨지는 신앙서적들을 기독서점에서 몇권 골라서 본 것 외에는 없습니다.

저는 말씀 가운데 예수님이 친히 말씀 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하심을 보고 정말 성경이 그러한가 하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저는 진리가 무엇인가 알고 싶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도 우리가 진리를 알기를 원하고 있었고, 또 진리의 중요성이 얼마나 귀한지도 곳곳에서 기록되고 있었기에 저는 성경을 보기를 바로 그 진리를 깨닫기 위해 보았습니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시편 119 : 142]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언 3 : 3]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 : 32]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한복음 17 : 17]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한삼서 1 : 4]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린도후서 13 : 8]

위에 나열된 말씀대로 우리는 분명히 진리 안에서 행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리가 우리에게서 떠나서는 안되고, 우리가 진리를 거스려서도 안되고, 또 성도라고 하는 우리들이 진리를 따라서 행하여야 함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고, 또 분명히 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진리를 말 할 때에도 과연 진리가 무엇인지를 먼저 깨닳아 알고 난 후에 말을해야 함이 옳다 하겠습니다.

ㅇㅇㅇ님도 잘 아시겠지만 성경에서 진리는 여러 곳에서 예수님이 진리 되심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은 곧 복음이라는 것도 증거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에 기록된 말씀은 에베소서 1장 4~12절까지 기록된 말씀입니다.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앞전에 ㅇㅇㅇ에서 ㅇㅇㅇ님과 저는 율법이냐 은혜냐를 갖고 작은 논쟁아닌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작은 의견 충돌이 어쩌면 지금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을 더 진보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라 여깁니다.

ㅇㅇㅇ님은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말씀은 맞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성경 말씀이 아무런 분별이나 살핌도 없이 무조건 지금의 우리들에게 적용이 되야 한다고는 저는 생각지 않습니다.

말씀 중에는 시대적인 역사나 배경도 엄연히 있었고, 또 그 말씀의 효력이나 기한이 정한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저와 ㅇㅇㅇ님이 의견을 갖었었던 율법이냐 은혜냐의 바로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ㅇㅇㅇ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가 율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거룩하고 존경할만하니 그 말씀대로 우리는 모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ㅇㅇㅇ님의 그 주장이나 가르침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님을 조심스럽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알기로는 율법은 그 기한이 정해져 있었던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씀 드리면 율법은 그 목적과 기한이 뚜렷이 정해져 있었던 하나님의 법이었다는 것입니다.

기한 = 모세로 부터 요한까지였고, 그 목적 = 범법함을 위해 하나님이 그 무언가에 더한 것 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음의 성경 기록으로 분명히 우리에게 증명이 되고 있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 16 : 16]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예수)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 : 19]

그리고 신약 성경이 시작되는 지점에서도 가 보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 1: 1]라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도래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가복음 1장1절에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라고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성경의 기록들로 미루어 보아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목적이 무엇이었으며, 또 그 기한이 어느 때 까지였는 가를 우리는 자세히 봄으로 깨달을 수가 있다고 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7절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갈라디아서 3장 전체를 읽어보니 잘 알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에게 세운 은혜의 언약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람은 누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다는 그 새언약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 미리 정하신(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은혜)언약을 사백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고, 또 그 약속(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 한다는 것을 말 하고 있는 것이엇습니다.

갈라디아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갈라디아서를 좀더 살펴서 바울이 말하고 싶었던 복음, 즉 은혜의 진리의 말씀이 무엇인가 좀더 살펴 볼까 합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며 1장 4절부터 이렇게 말합니다.

"4, 그리스도(예수)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예수)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저는 이 부분을 처음 볼때는 얼핏 보아 바울의 그 격분이 참으로 격하고 어딘가에 좀 편협해 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약간 들긴 했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성경을 읽어가다 보니 바울 사도가 왜 그토록 격분했는가를 이내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누구든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할 정도로 복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보아 복음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저렇게 까지 상기되어 격분했을까 저는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복음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 복음의 일꾼이 된 것을 갈라디아 1장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은 자기의 사도직이 사람들에게서 난 것이나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사도직이라고 자신의 사도 직분을 밝힙니다.

그리고 1장 12절에서 가서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은 자기 사도직이 사람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 세움받은 사도직은 절대로 사람에게 나거나 사람에게 배운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바울은 그 누구에게도 복음의 사도가 되는데 있어서 사람의 도움이나 어떤 집단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지금의 성도들이 신학을 하듯 그런 신학을 한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은 바울이 바울이라는 명칭을 갖기 이전에 사울이었을 당시에는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던 사람입니다.

성경 기록대로 볼거 같으면 바울은 그 누구보다 율법을 잘 배워 율법에 통달했고, 또 율법의 행위나 의로도 전혀 흠이 없던 사람 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 즉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장소에도 직접 가담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당시에는 바울은 율법을 배우고, 율법의 의를 자랑하였던 그야말로 유대교에 열심이었던 사람이었기에 그리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던 때에는 복음의 복자도 몰랐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이제 율법이 아닌 은혜의 복음 전하는 사도가 된 이유는 그 유대에서 사람으로부터 말미암아 사람으로 부터 배운 그런 신학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람에서나 어떤 전통적인 사람들이 가르치는 그런 기관이나 단체로 부터 으로도 받은 그런 신학이 결코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신학은 전적인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신학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에 율법에 관한 신학은 사람으로 부터 받을수 있을 지 모르지만 적어도 복음 만큼은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 말미암은 하나님의 계시로만(저는 성경도 하나님으로 부터 계시된 것이기에 이에 포함된다고 봄) 받아야 만 그 복음이 온전하 ㄴ복음이 된다고 여겨집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 : 5 참고)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로 가만히 들어 온 거짓 교사들은 이 바울이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다는 그 계시된 복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신학(율법)을 한 자신들 만이 사도답다고 하며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계시된) 복음을 무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거짓교사) 복음으로만 구원을 받는게 아니라 복음으로 구원 받은 후에도 할례나 절기(율법)를 지켜야만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 진다고 거짓 복음을 갈라디아 교회 안에 퍼트렸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사실이 고린도에 잇는 바울에게 전해지자 그만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이 격분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두가지 거짓을 말한 그들(거짓교사들)을 향해 "저주를 받을 찌어다" 하는 하나님을 대변하는 그런 불호령을 외친 것입니다.

저가 보기로는 거짓 교사들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했던 그런 자들이며,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했던 그 말씀을 애써 부정하거나 아니면 그 은혜를 방해 하려던 사단의 무리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런자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곧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은 자들이나 다름 없었기에(로마서 10장 3절~4절 참고) 그래서 바울은 그런 격분을 토하듯 갈라디아 교회에 몰래 들어온 그 거짓교사들을 향해 "저주를 받을 지어다" 하고 말할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 됩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그 거짓교사들의 정체갈라디아서 6장 13절가서 이렇게 밝힙니다.

"할례받은 저희라도(거짓교사)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갈라디아성도)로 할례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이 뜻은 바울은 그들이(거짓교사들) 할례를 받았다고는 하나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그 율법 안에 속한 할례를 받으라고 함으로 억지로 그 성도들에게 율법의 멍에를 지우려고 한다는 것을 바울은 지적하고 잇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 여행중에 갈라디아 교회에 전에도 한번 전한적이 있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복음을 언제부턴가 몰래 들어 온 거짓교사들은 그 바울의 복음이 틀리다고 하면서 성도가 구원을 이룰려면 할례나 절기도 지켜야 한다는 교묘한 사단의 계략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바울 사도는 알게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미 로마서 첫장 9절에서 선언하기를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하였것만 거짓 교사들을 자신들도 정작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율법에 속한 가르침을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가르치려 했다는 것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3절을 들어서 정확히 지적한 것입니다.

이런 예는 유독 바울만이 격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도중에 가장 예수님의 수제자 격이었던 베드로도 사도행전 15장에서 이런 문제 앞에 당면 했을때 그 도 회중 앞에 일어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율법)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이방인)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사도행전 15장 9절~10절)

존경하는 ㅇㅇㅇ님!

우리는 어떠한 유혹이 와도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육체가 없다[롬 3 : 20, 갈 2 : 16] 던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의 가르침에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고 아멘 으로 화답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육체가 없다고 잘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내(바울사도)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갈 2:19]

사랑하는 ㅇㅇㅇ님!

ㅇㅇㅇ님도 잘 아시겠지만 율법도 거룩합니다!

계명 역시 선하고 거룩하며 의로운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 율법이나 계명이 제 아무리 선하고 거룩하고 의롭다 하여도 우리를 의롭게 하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 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율법의 의로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칭찬 받을 육체가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단정 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깨닳음으로 진리를 배우고, 그리고 그 진리 안에서 바르게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그런 성도가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율법이 무엇이며 은혜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하나님을 찹거나 주님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사도는 자심이 그 율법을 깨닫고 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라 교훈하는가 우리는 다음에서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9,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바울사도)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로 7: 9~14]

그렇습니다.

우리는 육신에 속했습니다.

계명이 이르매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던 죄가 살아난 것입니다.

그 죄가 살아나자 우리는 그 죄 때문에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그 하나님의 율법이 적용이 된 것입니다.

죄가 계명이 오자 그 계명으로 말미암아 바울을 속였다고 합니다.

바울은 어떤거에 속은 것입니까?

계명이 바울을 살릴줄로 알았것만 사실은 그 반대로 계명이 바울이 죄인이라는 것을 지적 하자 바울은 그만 그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는 율법에 따라 사망을 당하는 자가 되고 말았다는 고백입니다.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선한 것 자체가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죄가 죄로 들어나기 위해 그 선한 것으로 말미암았다는 뜻입니다.

죄로 심히 죄가 되게 그 선한 율법과 계명들이 역활을 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은 신령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에 속하였기에 죄 아래 팔리는 것입니다.

율법은 오직 우리의 죄가 죄로 들어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죄가 더한 곳(죄가 죄로 들어 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 : 20]

율법은 가입된 것입니다.

율법이 가입되지 않았었다면 우리는 바울사도의 고백처럼 우리 역시 탐심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로마서 7 :7]

우리가 탐심을 알지 못했다면 그 탐심이 얼마나 거룩한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것인 줄 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고 그 알지 못함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도 몰랐을 것입니다.

죄인이 자기가 죄인인 줄도 모르는 것 많큼 불행할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 앞에 어떤 함정이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걸어간다면 그 결말은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 길처에 누군가로 부터 함정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함정을 피해 갈 수가 있거나 아니면 제거 할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율법은 그런 역활을 한거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 후에 이 땅에 우리가 피하여 들어갈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길을 펼쳐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그런 율법을 죄인들 앞에 더하고 가입시키셨던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로마서 3 : 10 참고]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율법을 바로 알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 : 18]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라 믿어 집니다.

율법은 선하고 의로운 몽학선생입니다.

율법이라는 그 선한 선생으로 인해 우리가 비로서 하나님 앞에 다만 죄인일 뿐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속에 선한 것이 없고 선한 것을 하려고는 하나 그 속에는 악한 것도 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몽학선생(율법)은 우리를 은혜의 선물을 거저 주시는 사랑의 주님께로 인도하는 그런 고마운 몽학선생이었던 것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라디아서 3 : 24]

다음의 말씀은 우리에게 마치 그 몽학선생이 말 하는 듯한 소리로 들리는 듯 합니다. 물론 사도바울 께서 말한 것이지만 그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예수)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롬 7 : 4]

사랑하는 ㅇㅇㅇ님!

우리의 모든 구원의 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오직 그분 예수를 통해 우리를 구원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했던 그 율법과 계명을 그분 예수의 몸으로 폐하여 주신 것입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예수)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복음을 재대로 안 바울사도의 복음의 가르침을 갈라디아 교회에 전하는 소리로 또 한번 들어 봅시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갈 3:1~14]

그렇습니다.

저는 바로 이 은혜로운 복음의 말씀들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하며 또 예수를 저의 구원의 주(主)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 저는 이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기만을 소원합니다.

저가 하나님으로 부터 (곧 성경의 계시된 말씀)으로 부터 받은 복음은 하나님의 의(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의인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로 1:17~18]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누가 경건치 않는 자들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이 경건치 않는 자들임이 틀림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율법의 의가 아닌, 은혜의 의로만 거듭난 자들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것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것만 복음을 다른 복음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결국에는 불법을 행한 자가 되어 예수님 앞에서 쫓져나 지옥으로 가는 길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ㅇㅇㅇ님!

우리 주님의 피는 흠없고 점 없는 피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지로 흠이 없고 점이 없이 없어야 한다는게 저의 의견이자 곧 하나님의 뜻이라 여겨집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곧 복음에 합당한 자의 신앙이 되어야 이 분명 하다 여깁니다.

복음을 믿었으니 이제는 다른 그 어떤 행위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거듭 났으니 이제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식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은혜가 은혜되게 하라던 그 말씀을 외곡하거나 잘 못 이해하고 잇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살아나셔서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릴 위해 중보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와 상관없이 주님을 바라는 자들에게만 두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면서 죄를 전혀 짖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때마다 말씀대로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기도 한다면 주님은 우리의 그 죄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간구하시고 중보 해 주실것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중보)하시는 자시니라"[로마서 8 34]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 :28]

사랑하는 ㅇㅇㅇ님!

우리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신앙을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시작한 그 믿음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지켜가는 신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한 그 믿음을 우리가 만의 하나라도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방법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라 여깁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 : 2~3]]

사랑하는 ㅇㅇㅇ님!

부족한 저가 이렇게 두서 없는 긴 글을 써 놓고도 아직도 할말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여기서 마치려고합니다.

우리 같이 그리스도안으로 들어갑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는 길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며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들어가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립시다.

우리 주님이 몸으로 헐어낸(폐한) 그 율법을 우리가 다시는 세우는 어리석음에 봉착하지 말고 은혜의 법인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의 신앙이 새로워지게 하십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7~18]

사랑하는 ㅇㅇㅇ님!

우리 이제는 십자가의 도를 배웁시다.

이제 더 이상 율법이니 은혜니 하는 그런 어리석은 변론을 그칩시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셨다가 세례요한의 때 까지입니다.

약속하신 자손(예수)이 오시기 까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율법적인 행위가 하나님 앞에 의롭고, 혹은 자랑 거리가 될 거라고 여기는 교인이 있다면 그는 아직도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온전히 들어 간 성도가 아닌 것이라 여겨집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안입니다.

율법이 아닌 은혜안 말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ㅇㅇㅇ님!

이글을 쓴 시간이 벌써 3시간이 넘게 흐른거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 글을 마무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서 이 글 속에서 친히 성령으로 역사 하셨음을 믿습니다.

저는 언제나 마음 속에 한가지 소원이 오직 우리 하나님의 복음에 합당한 분들과 같이 동력하기를 늘 소원 했었습니다. 이 소원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또 역사 하시면 그럴 날이 언젠가는 꼭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때에 저와 같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애쓰고 협력하실 분이 ㅇㅇㅇ님이라면 저는 더 할 영광이 없다고 여기겠습니다.

왜냐? 저가 그 ㅇㅇㅇ에 오를때에는 그런 기대감을 갖고 올라 갔던 것이기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져 허물 많고, 하나님 앞에 탄식과 범죄가 많은 죄인일 뿐이지만 저 역시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에[고전 15 : 10]렇게 감히 ㅇㅇㅇ님에게 무례한 졸필을 드릴 수가 있었음을 용서 해 주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이제 ㅇㅇㅇ님을 비롯, ㅇㅇㅇ님의 가정과 교회에 우리주님이 주시는 영육간의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 이 부족한 사람의 편지를 읽어 주신 것 감사합니다. 혹, 글 속에서 잘 못 된 견해나 ㅇㅇㅇ님을 불쾌하게 한 내용들이 있었다면 너그러히 용서 해 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기회가 온다면 오늘처럼 저가 받은 은혜 대로 또 글을 써서 보내 드릴까 합니다.

그럼 언제나 ㅇㅇㅇ님에게 우리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이 임하시고 우리 주님으로 부터 말미암는 은혜와 평강이 언제나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심을 정말 감사합니다.

ㅇㅇ에서 ㅇㅇㅇ드림